윤석화, "<마스터 클래스>는 내 40년 연극 인생의 답"

김채령님 | 2016.04.05 12:48 | 조회 362

   

1월 말 <마스터 클래스>의 제작발표회가 열렸을 당시, 이 작품이 그녀의 데뷔 40주년 기념작이라는 것에, 그리고 올해 그녀가 환갑을 맞았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중장년층에게 더욱 친숙할 노래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로 시작되는 음료수 오란씨의 CM송을 비롯해 수백여 편의 CM송을 부른 상큼하고 발랄한 20대 배우가, <신의 아그네스> <토요일 밤의 열기> 등을 통해 때론 신비롭게, 때론 정열적으로 무대를 누비던 청년 배우로, 이제 "앞으로 살 날이 10년, 20년 남지 않았냐"라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웃으며 하는 관록의 배우 윤석화가 된 것이다.

연극 데뷔 40주년,
<마스터 클래스>로 카리스마 무대 다시 한번


1975년 민중극단 연극 <꿀맛>으로 데뷔 후 껑충 스타 배우 반열에 올랐던 윤석화. 그녀가 자신의 데뷔 40주년에 마련하고 있는 무대는 <마스터 클래스>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의 작가 테렌스 맥널리가 쓴 이 작품은, 작가가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은퇴 후 줄리어드 음악원 마스터 클래스를 직접 보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치밀한 구성 속에 그녀의 삶과 예술세계를 밀도 높게 담아낸 작품이다.

윤석화가 주역으로 나선 1998년 한국 초연은 앵콜 공연까지 전석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그녀는 이 작품으로 최연소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앵콜 공연 첫 날, "이번을 끝으로 다시는 <마스터 클래스> 무대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한 번 할 때 4개월, 10개월씩 하는 건 괜찮은데, 그걸 다시 하는 걸 싫어해요. '내가 첫사랑만큼 그 다음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 다음에 할 때 기술적으로는 좀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처음과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그게 두려운 거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제가 수면 위로 나오는 과정이 너무나 치열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어요. 여기서 이 작품을 내려놓자, 그랬던 거죠."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주역을 맡았지만 1997년 뉴욕 공연 캐스팅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깊은 슬럼프가 그녀를 덮쳤고 <마스터 클래스> 전까지 3년 간 그녀는 무대를 멀리했었다.

"이번에 작품을 어떤 걸로 할지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신의 아그네스>를 할까, <마스터 클래스>를 할까. 더욱이 내가 다시 안 하겠다고 한 작품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은 단순히 상업적인 작품이 아니라, 어떤 기념작품의 의미로 하는 것이고, 내가 왜 40년 동안 연극을 했는가, 거기에 대한 방점을 찍어야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방점을 찍게 해 줄 수 있는 작품이 <마스터 클래스>였어요."

30대 후반의 나이로 극중 50대 초반의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했을 18년 전보다 지금이 마리아 칼라스의 나이 때에 맞는 삶이 더 묻어나올 수 있지 않을까. "에너지가 과거보다 떨어지는 게 있을지 모르지만, 나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은, 깊이와 넓이를 찾아내고자 한다."며 두 눈을 반짝이는 그녀다. '참 좋아하는 오랜 벗'이라 말하는 지휘자 구자범의 합류도 그에게 힘을 실어준 듯 하다.

"1994년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을 할 때 전주시향이 반주를 했어요. 자범은 그때 시향의 피아니스트였죠. 그런데 다른 클래식 하는 친구들이랑 너무 달랐어요. 다른 사람들은 약간 시계추 같이 시간 되면 딱 왔다 끝나면 딱 가고. 근데 이 친구는 내가 하는 일에 너무 큰 관심과 호기심을 보였죠. 연습이 끝나도 저희 연습실을 기웃거리길래 우리 연습을 더 시켜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항상 연습이 끝난 후 반주해 주면서 배우들을 다 연습 시켜줬던 너무너무 착한 소년이었어요.(웃음) 자범은 정말 음악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음악에 자신의 달란트를 넘치든 부족하든 아낌없이 쏟아 붓는 그런 친구입니다. 제가 이번 작품에서 음악감독으로, 반주자로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선생님이 하자면 무조건 한다고 해서 천만군을 얻은 것 같아요."


이제 자유로워진 나이,
연극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생명을 위해 헌신하고파

연극 뿐 아니라 그녀는 곧 이영애의 출연으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사임당, 더 히스토리>에서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로 오랜만에 브라운관 앞에 설 예정이다.

"이 나이가 되면, 그리고 인기가 떨어지고 나면 (웃음) 되게 자유로워져요. 무대든 TV든 영화든 작품만 좋으면 어떤 역이든 상관 없어요. 물론 죽는 날까지 제 이름 석자 앞에 '연극배우'가 붙는 게 제일 좋긴 하지만요."

40년 동안 영광도 컸고 굴곡도 많았다. "연극은 애증의 대상이다."라며 웃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연극과 함께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첫 번째 이유로 '정신'을 말했다.

"어찌 보면 제가 연극계 첫 번째 대중스타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이 돼버려서 쉽게 연극을 떠나지 못하는, 굉장히 자유롭지 못한 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척박한, 불모의 땅을 누군가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건 정신이죠. 정신이 있으면 지키게끔 되어 있어요. 그런 사명감도 젊었을 때 더 하늘을 찔렀는데, 이제는 그것에서도 더 낮아지고 더 넓어지면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고 할까요? 후배들이 요즘 너무 잘하잖아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후배들에게 길이 되어주고 싶어요."

'약속'은 그녀가 연극과 함께 한 두 번째 이유다.
"저는 늘 저와 함께 극장에서 울고 웃었던 그 관객들을 기억합니다. 그게 저를 지탱해줬던 힘이기도 하고요. 물론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에 내가 더 노력할 수 밖에 없어요. 더 큰 사랑을 갖고 더 많은 준비를 했을 때 관객들이 '아, 저 공연 봐야겠다', 그 관심을 갖고 와주는, 그 사랑 만으로도 배우는 족한 거죠. 최선을 다하고 나서도 관객이 없으면 후회는 없는 거에요. 나 자신을 위한 약속, 내가 배우들과 스텝들과 한 약속, 그리고 관객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끝끝내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배우 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그녀는 영국에서 공연 프로듀서로도 활약 중이다. 진행중인 작품만 해도 5편. 그 중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뮤지컬 <톱 햇>은 2013년 올리비에상 최고 작품상, 안무상, 의상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있어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가능하면 일을 좀 줄이고 싶어요. 제 인생의 남은 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공연 뿐 아니라 생명을 위해서 헌신하는 일이거든요. 아프리카나 네팔 아이들도 지원하고 있지만, 역시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여성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앞으로 저는 그 일에 주력을 할 겁니다."

대화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사랑, 고난, 위로, 용기 등과 같이 한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모두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힘이 큰 존재에 대한 것들이었다. <마스터 클래스>를 두고도 "큰 사람(마리아 칼라스)을 통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건 위로와 용기에요. 그녀의 신화 같은 삶이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가 된다고 생각을 해요. 더불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남다른 의미, 영향이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고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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